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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간의 가르침 본문
15-8. 부녀간의 가르침
"설아,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니?"
"무슨 부탁이요 아버지?"
원님과 한창 놀고 들어오니 아버지가 부탁이 있다며 따로 설화를 불러냈다.
"혹시, 이 아비 좀 가르쳐줄 수 있겠나?"
"네? 아버지를요?"
"그래. 아침에 네 엄마랑 둘이 무슨 얘기를 했던 건진 모르겠다만, 나도 좀 가까워지고 싶구나"
"그래서 가르쳐 달라시는 건..."
"파다하게 퍼진 네 소문은 귀에 못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러니, 내게 그 인품을 가르쳐줄 수 있겠니?"
"인품을... 요?"
"그래"
아버지는 결의에 가득 차 계셨다.
이건 결코 농담이 아니라 진지한 상황이다.
설화는 뜬금없는 '인품'을 가르쳐 달란 말에 꽤 놀랐다.
"제 인품은 그리 뛰어나지 않은걸요..."
"뛰어나지 않기는! 이 아비보다 백배 천배는 더 뛰어난데!"
"내 인생 살아오며 너같이 아량과 이해심이 넓은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조금이라도 배우고 싶을 뿐이란다. 부녀관계라 좀 부담스러울 순 있어도, 도외주면 좋겠구나"
"전 부녀관계라 그런 게 아니에요! 인품을 가르치고 배운다는 게 이상해서 그런 거죠"
"인품을 가르치는 게 이상하다고?"
"네. 사람은 고쳐 쓸 수가 없는걸요? 제가 이해하는 건 그저 가능성뿐이에요. 그걸 배우고 나누고 할게 아니에요"
"그 가능성을 볼 안목은?"
"그건 스스로 판단하기 나름이죠. 아버지도 어떤 사람이 충분히 자기 잘못을 인지하고 나아지길 원하는진 아실 수 있으시잖아요"
"...."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충분히 뛰어나신 분이세요! 갑자기 이러시니 좀 당황스러운걸요..."
아버지는 좀 혼란스러워 보이셨다.
그도 그럴게, 설화의 아버지는 뭐든 배울 수 있다 생각하시는 분이셨기 때문이다.
자기 실력이 부족해 조금 뒤처진다 한들, 배우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노력하면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하는 분이셨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성향이 너무나도 짙었다.
부족하면 스스로 시작하는 게 아닌 가르침 받기만을 원하셨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어, 어... 그래... 괜찮고 말고"
"... 아버지께서 배우셔야 할 건 인품이 아닌 것 같네요"
"인품이 아니라고?"
"네. 제 생각엔 아버지는 '생각하는 법'을 배우셔야 할 것 같아요"
"생각하는 법...?"
"네! 스스로 깊게 생각하고 고민하시는 방법이요"
"제 입으로 말하긴 뭐 하지만, 아버진 꽤 단순무식하게 살고 계셔요..."
"바뀌고 싶으시다면, 세상을 아버지 스스로의 관점으로 보는 힘을 기르시는 게 좋을 거예요"
"세상엔 가르치고 이어받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사람이 있듯, 모두 자기만의 생각이 있으니까요"
"모든 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 스스로 방법을 찾고, 옳고 그름을 따지며, 좋고 싫음을 보여줄 수 있는 게 사람이잖아요..."
"전 솔직히, 아버지가 많이 부족하시다고 느끼고 있어요. 인품은 잘 모르지만, 항상 체념하시거나 크게 저항하질 않으세요. 할아버지께서 차별하셨던 그때도, 지금도요!"
"아버지는 혼자서 생각해보셔야 해요. 제발요..."
"..."
"......"
두 사람은 서로 말이 없었다. 설화는 꽤 불편했고, 아버지는 속이 복잡했다.
"전... 가볼게요"
설화가 가고 아버지 혼자 남아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설화는 아버지를 찾아가 봤다.
매화나무 주변 바위에 앉아 짚 한가닥을 잘근거리고 계셨다.
"아버지, 뭐 하세요?"
"아, 그냥... 시간 좀 보내고 있었다"
"오후에 심하게 말해서 죄송해요"
"아니야! 전혀! 오히려 말해줘서 고마운걸!"
"정말요?"
"그럼! 너 가고 생각 많이 해봤다. 내 문제가 뭔지... 니 말 그대로야. 내 주장이 없었어. 준하도 마찬가지로 키워버렸고..."
"근데도 준하가 나보단 몇십 배는 낫더구나. 적어도 옳고 그름은 잘 판단했으니... 난 아니었고, 그대로 당하기만 했지. 네 말이 다 맞았다"
"홀로 고민해 볼 기회를 줘서 고맙구나 설화야"
"..."
"정말 고맙다"
아버지는 설화를 똑바로 쳐다보며 연신 고맙단 말을 전했다.
설화도 갑갑했던 맘이 풀린 건지 가벼이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 옆에 앉았다.
"도움 됐다니 다행이네요. 저도 앞으로 아버지랑 잘 지내보고 싶어요! 그럴 수 있겠죠?"
"그럼. 당연하지 우리 딸"
부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믿음으로 가득 찬 미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