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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도 넓은 벽 본문
15-5. 높고도 넓은 벽
가령이는 공터에서 무술 연습을 하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설화는 잠시 급한 일이 생겨버렸다며 안타티카로 갔고,
준하도 일을 나가있었다.
그나마 동주라도 있으면 나았겠지만, 이미 친구들이랑 놀러 나간 지 오래다.
"..."
'언니랑 있고 싶다... 언니는 그렇게 일하면 안 힘든가...'
'언니는 맨날 바쁜데도 멀쩡해 보여... 난 아니고.
거기다가 맨날 빛나... 어떻게 가능한 거지?'
'나도 언니처럼 되고 싶다... 못하는 거 하나 없는 팔방미인에 다정하고 친절하고 따뜻해서 힘이 되는...'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엄청 어렵겠지? 그런 실력에 그런 성품이면...
난 한참 멀었고, 성격도 영 아니고'
'기 쎈 게 문젠가... 그렇게 따지면 언니도 한 고집 하긴 하잖아...
이건 고집의 문제가 아닌가?'
"우으아-! 몰라!!"
가령이는 이내 혼자 성을 내더니 나무그늘 아래로 가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중얼거리며 신세한탄을 계속하다 시를 읊었다.
"그 마음 사군자 중 으뜸이고, 성인군자 중 으뜸일세
저 닿지 못할 하늘 그대는 어찌 이리 매정한지
사랑은 달그림자 보일세라 은은하게 밝을 뿐일세
임 향한 내 마음 일편단심이랴마는,
그대는 어찌 잘도 알아주어 이리 매정한지
저 모습 높은 하늘 찌르는 푸른 청산일세
저 하늘 닿지 못할 마음이 임을 부르짖으니,
기어이 내려와 얼러주며 어찌 이리 매정한지
재주는 백미이고 신선일세
강 아래 가던 새 보며 부르는 임은 어찌 이리 매정한지
아아 님아 우러러볼수록 높아지는 임아
어찌 이리 매정하여 내 더 우러르게 만드나니,
어서 님아 내게로 와 날, 더 품어주소서"
"..."
"이런 거 해서 뭐 해... 아무도 모르는데-"
"아닌걸?"
"...."
"언니!? 언제 왔어?"
"나무아래에 앉아서 중얼거릴 때부터. 좋은 시였어"
"그건..."
"그래서, 어찌 그리 매정하다 울부짖게 만든 건 누굴까?"
"....."
가령이가 말이 없자, 설화는 그 옆에 나란히 앉았다.
"우리 동생- 언니가 그렇게 좋았어요?"
"..."
가령이는 설화의 말에 대한 대답을 일부러 피하고 있었다.
"가지 너머 쉬이 날지 못하는 두 꾀꼬리를 보아라.
어찌 저리 좋다 하며 구슬프게 우는가.
달디달며 쓰디쓴 저 지저귐은 난형난제일세
서로가 백미이니 어찌 보지 않을수가 있나
그들 향한 우러름이 저 하늘 찌르니 어찌 저들이야 모르겠는가 하나,
서로 우러르며 좋다 지저귐이라 더 구슬플 수밖에
한 치 앞 모르고 좋다 지저귐이라 더 아름다울 수밖에"
"...?"
가령이는 설화가 갑자기 읊은 시조에 놀랐다.
그리고 설화는 가령이를 끌어다가 안아주었다.
"뭐야 그 시...?"
"답시"
"내 거 답시?"
"그럼 누구 답시겠니?"
"..."
"가령이 네가 보는 나는 팔방미인에 굳세고도 어진사람인 것 같네"
"응..."
"근데, 내 눈엔 너도 팔방미인인걸?"
"정말?"
"그럼. 너도 충분히 뭔가 하고도 남는 사람이야"
"마을 애들이 누굴 가장 동경하는지 아니?"
"몰라... 언니나 오빠 아니야?"
"아니, 오빠도 물론 동경받긴 하지만, 다들 널 제일 좋아하는걸"
"진짜? 나를? 날?"
"그럼. 넌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못하는 것도 없지, 심지어 이쁘잖아?"
"근데 아직 다 부족해..."
"흠- 동주가 그러던데, 무과 안 들어가고 싶어 한다고 말이야"
"그건 이거랑 상관없어!"
"그냥... 다른 거 하고 싶어"
"다른 거?"
"언니는 음악가일 하잖아. 나도 뭔가 좀 다른 일 하고 싶어"
"근데 그러면 부모님 기대 져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왜?"
"좀 그런 말이긴 하지만, 무인으로서의 기대를 받던 건 오빠고,
넌 그저 잘 자라서 하고 싶은 걸 해나가면 좋겠다고 하셨었어"
"언제!?"
"너 어릴 때에도, 여기 휴가오기 전에 연락드렸던 때도"
"요즘 네가 침울해 보인다고 걱정하시며 말하시지 뭐야?"
"나도 똑같아. 네가 원하는 걸 하면 좋겠어"
"굳이 이런 고지식한 규칙을 따를 필요는 없어"
"네가 하고 싶은걸 맘껏 하렴"
"그리고 말이지... 내 동생이 너라서 난 정말 행복해"
"...."
"역시..."
"?"
"언니가 최고야!!"
"어머! 후후후. 그렇게 좋아?"
"웅- 너무너무 좋아"
"오빠 서운할라~"
"그래도-"
가령이는 고민이 가셨는지 평소처럼 활기찬 얼굴로 설화에게 안겨서 얼굴을 비볐다.
그러곤 한참을 떨어지려고 하질 않았다.
역으로 난처해져 버린 설화였다.